남들이 갔던 길을 배웠다
남들이 하는 방법을 배웠다
나만의 길이 어딘지 모른다
나답게 쉬는 방법을 모른다
생각해보니 스스로 생각과 선택이라는 것을 해야하기 시작한 시점부터 나는 꼭 남들이 갔던 안전한 길을 선택했던거 같다. 다른 한편으로 생각하면 그 길 이외의 것은 알지도 알고싶어 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보통의 삶이 가장 안전하고 무난하다는 어머니의 의견도 컷으리라. 그렇게 교직의 꿈을 꾸며 고등학교 3학년까지 보냈다. 그리고 고등학교 3학년이 되어서 급하게 진학할 과를 바꾸게 된다.
언론홍보학과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선택지였다. 언론에 관심도 없었으며 신문이나 뉴스를 챙겨보는 편도 아니었다. 내가 소비하고 있던 미디어는 일본 애니메이션 하나에만 국한되어 있었다. 영화를 볼 줄도 몰랐으며 영상, 저널리즘에 대한 관심도 없었다. 단지 KBS나 MBC같은 방송국에 들어가서 월급받으며 안정적인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진학한 과였다. 뭐. 이제와서는 저 선택을 후회하지는 않는다. 물론 방송국을 갈 일은 아마 없겠지만 말이다.
보수적인 언론계의 영향은 대학교의 학과, 방송국에도 그대로 적용되었다. 학교 방송국은 철저한 학년별 수직사회였고 졸업한 선배들은 마치 신과 같은 존재로 떠받들여졌다. 싫어도 술을 마셔야했고, 싫어도 선배가 부르면 밤이라도 뛰어나가야했었다. 선배들에게 잘 보이고 관계를 잘 맺어두는 것이 사회에서 성공하고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시절이었다. 결과만 말하자면, 사회적인 위치에서 그 선배들의 덕을 본 것은 하나도 없는 지금이다. 이제와서 생각하면 그 때 선배들은 참 후배를 잘 이용했던 사람들이었고, 그게 통하던 시절이었다.
"누구누구 선배 봐라.
저렇게 바닥에서부터 힘들어도 버티니까 지금 방송국 카메라 정규직이잖아.
너도 힘들어도 버티면 저렇게 될 수 있어"
"우린 지금 너만 믿고 있는거 알지?
언제 졸업이지?
빨리 졸업해야 우리 회사 올텐데!
그러니까 이번 주말 알바할 수 있지?"
지역 사회에 아는 PD, 기자들이 있는 척을 하는 것이 그 때 나의 멋이었고 나의 능력이라고 생각했다. 취업에 대한 고민도 없었고 남들보다 한걸음 앞서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군대를 가게 되었고, 전역을 기점으로 내가 가는 길에서 나는 전혀 앞서있지도 않으며, 오히려 나보다 훨씬 많은 사람들이 같은 길에서 앞서 가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다.
전역 후 1년 휴학을 하게 되었고, 처음으로 휴식이라는 시간을 가지게 되었다. 연애도 참 열심히 했다. 알바도 참 열심히 했다. 아마 휴식도 충분히 취했으리라. 그래도 취업준비에 대한 죄책감과 열심히 살아야 한다는 압박감은 떠나지 않았다. 항상 말로만 하는 아는 척으로 덮어 두었다. (생각보다 이 덮어두는 버릇은 지금도 고쳐지지 않고 있다)
4학년 때도 인맥만 믿고 크게 취업준비를 하지도 않았으며 남들 다 하는 공무원 준비도 잠깐 했었다. 3개월 정도의 짧은 시간이었고, 다시는 공무원 준비같은 시험 준비를 하지 않으리라고 다짐하였다. 그리고 졸업 후 무난하게 알던 PD님의 사무실에 들어가서 일을 하게 된다. 뭐. 무난하게 신입PD로서는 업무를 잘 수 행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서울을 올라가게 되고 진정한 회사생활이 시작된다.
서울 생활은 자아의 발전보다도 생존에 초점이 맞춰진 생활이었다. 단지 먹고 자는 생존의 문제를 떠나서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발버둥의 과정으로 기억된다. 사람을 만나는 것에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게 되었고, 불확실한 미래를 보는 현재에서 안정감을 찾으려고해도 노력이 들어간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많은 것들이 완벽하게 불완전했으며 나 스스로도 상당히 많은 에너지를 안정감을 찾는데 쏟고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발버둥 칠 수록 안정감이라는 것은 날 찾아와주지 않았고, 그대로 서울생활 2년 만에 '휴식'에 대한 제대로 된 고민을 하게 되었다.
어떻게 자리잡은 서울 생활인데 이 모든 것을 포기하고 고향으로 내려가자고?
아깝지 않아?
그래도 지금 살만한데 죽을만큼 노력해봤어?
솔직히 남들만큼 노력 안했잖아
외로워? 너만 외로워? 다 외로워
돈 없어? 더 아껴야지
휴식을 선택하기 가장 망설여 졌던 것은 정말 많은 부정적인 물음이 스스로에게 몰아쳤던 것이었다. 20대에 제대로 된 노력을 해본 경험이 없었기에 정말로 내가 휴식을 취해도 괜찮은가에 대해서 스스로도 기준이 서지 않았던 것이다. 그리고 그 기준없음은 타인과의 비교로 이어지고 자존감의 하락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무작정 환경을 바꾸면 더 나은 삶이 기다릴 것이라는 판단 미스는 다시 이어졌고 노력없이 변화에만 기댄 휴식은 과소비와 섣부른 블랙기업 취업으로 이어졌다.
한 달간 휴식아닌 휴식을 취하고 다시 취업했던 회사를 한 달만에 그만둔 지금 시점에서, 제대로 된 휴식에 대해서 고민하고자 한다. 1년간 휴식을 취하기로 한 다짐은 비어가는 통장잔고를 보면서 그 자신감을 잃고, 알바를 하면서 내 생각을 정리하고자 한 다짐은 알바 시급을 보면서 힘을 잃어간다. 그럼에도 휴식과 생각의 힘을 믿기에 나는 휴식에 대해서 고민하고자 한다. 이 블로그, 에세이는 내 휴식에 대한 고민과 기록이 되어갈 것이다.
'휴식에 대한 허가는 누구에게 있을까' 카테고리의 다른 글
휴식의 허가_언제까지 쉴 수 있을까 (0) | 2020.03.20 |
---|---|
휴식의 허가_백수도 바쁘다구요 (0) | 2020.03.18 |
휴식의 허가_나는 휴식 완벽주의자(Perfectionism)입니다 (0) | 2020.03.08 |
휴식의 허가_내 휴식은 얼마의 가치를 가지고 있을까 (0) | 2020.03.05 |
휴식의 허가_귀하의 커리어가 휴면상태로 전환됩니다 (0) | 2020.02.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