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름 멈추지 않고 달려왔다.
그래서 멈추는 것이 두려운 것일까.
자칫 잘못 읽을 수 있는 단어다. '나름'과 '나는'은 엄연히 다른 단어다. 나는 멈추지 않은 것이 아니라 나름 멈추지 않은 삶을 살아왔다. 누구보다 훨씬 더 노력을 한 것도 아니며, 다른 사람들 보다 엄청나게 치열하게 살아 온 기억도 아직은 없다. 주위에서는 어떻게 볼 지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스스로 평가하는 나는 그렇게 살아온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곧 정지를 의미함은 아니다. 엔진의 RPM과 속도가 달라서지 멈춘 적은 단 한번도 없었다. 그래서 열이 나는 엔진을 식히고자 고속도로 휴게실로 차를 끌고 왔다. 그리고 엔진을 식히며 잠시 휴식을 취해야 하는데. 나는 지금 고속도로에서 달리는 다른 차들만 멍하니 쳐다보고 있다.
지금의 내 상태는 꽤나 불면증이 심각한 상태이다. 새벽에 잠들고 낮에 일어나길 한달째 반복하고 있는 중이다. 이유인 즉슨, 불안함. 일하기로 예정되어 있던 카페에서 오픈이 5월로 미뤄졌다는 통보를 듣고 다시 커리어를 지속할 것인지, 적은 임금에도 업종의 전환을 해볼 것인지. 그것이 지금 나의 고민거리이다.
커리어의 휴면상태. 100세 시대를 말하는 21세기에 1년의 차이가 얼마나 클 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커리어에서 중요한 20대 후반 ~ 30대 초반이라고 한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 살면서 안 중요했던 삶의 시기는 언제였을까. 없지 않았나?
퇴사를 하고 고향으로 내려와서 다른 일을 하고 싶다고 하였을 때, 어머니는 이렇게 말했다. "너가 하고 싶은 일을 찾아보고 그래도 하던 일은 계속 할 수 있게 준비하고.." 음... 다정하게 들리는가. 적어도 나에게는 새로운 압박으로 다가왔다. 영상업이라는 특성상 프리랜서 일도 가능하고 직업과는 별개로 꾸준히 작업물을 만들 수 있다. 말하자면 일종의 보험같은 것이다. 카페, 서빙, 혹은 다른 일을 하다가 적성에 맞지 않거나 생각대로 일이 풀리지 않을 경우 다시 전공으로 돌아갈 수 있는 그런 보험말이다.
완전히 해약하지 못한 보험은 계속 나에게 연체료를 재촉하고 있다. 불안함이라는 연체료를 말이다. 한 달정도는 쉴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마저도 불안함이 날 재촉하고 있다. 결국 이도저도 안됀 상태로 한달을 바보처럼 지내버렸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지만, 실제로 아무것도 안해버린. 휴식조차 하지 못한 그런 한달을 말이다.
한 달동안 아무 것도 하지 않았지만 그래도 아예 아무것도 하지 않은 것 같다. 휴식을 취하는 법에 대해서 고민했고, 이렇게 블로그에 글도 써보기 시작했다. 영화도 실컷봤고 가족 이외에 아무도 만나지 않고 일주일 넘게 지내보기도 했다. 아마 지금이니까 이런 상황이 용납되는 것이 아닐까. 바보처럼 숨만 쉬면서 사는 생활 말이다.
쉴거면 제대로 쉴 것. 불안해 하지 말 것. 쫓기며 완성된 휴식에 따스함은 없을 것이다. 조금 외롭고 가끔 고민에 밤을 설칠 휴식이겠지만, 이 휴식 역시 나에게 의미있는 1년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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