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휴식에 대한 허가는 누구에게 있을까

휴식의 허가_언제까지 쉴 수 있을까

 

   학창 시절의 휴학과 사회인으로서의 휴식은 느낌이 많이 다르다. 휴학은 시간의 단위를 학기, 년으로 표현한다. '달'로 표현하지 않는다. 이와 다르게 퇴사를 한 후의 휴식은 쉬는 기간을 달, 년으로 말한다. 그만큼 쉴 수 있는 기간을 유동적으로 조정할 수 있고 정해져 있는 것이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자유가 있으면 책임도 따르는 법. 그 책임은 카드값, 혹은 통장잔고라는 수치로 돌아온다. 대부분 돈이 떨어질 때 즈음 구직을 시작하거나 미리 입사 시기를 그 때로 정하기도 한다. 매우 현실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최고의 백수는 갈 곳이 있는 백수이지 않은가. 그런데 갈 곳이 없이 당장 도피성으로 휴식을 선택한 것이라면 어떻게 해야할까.

 

나는 얼마나 쉴 수 있는 것일까. 아니, 언제까지 쉬어야 맞는 것일까

 


   흔히 쉬기 시작한다고 말하면 다들 한달, 두달의 단위를 말한다. 대표적으로 제주의 한달살기라는 것이 있지 않은가. 한달이면 충분히 긴 시간이고 그 사이에 자신에 대한 생각정리도 하며 쉴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인거 같다. 그러나 기왕 쉬는거, 여유가 된다면 2~3달은 최소한으로 잡으라고 하고 싶다. 한 달의 시간은 단위가 주는 느낌 때문에 길게 느껴지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초,중,고등학교를 보내며 대부분 한달에서 한달 반 정도의 여름방학을, 그리고 2달 정도의 겨울 방학과 봄방학을  보내게 되는데 이는 빡빡한 한국 교육 상황에서도 최소한 이정도는 쉬어야 된다는 '방학'이라는 타이틀을 붙일 수 있는 기간이라고 인증한 것이지 않을까. 물론 요즘은 이러저러한 이유로 30일도 안돼는 경우가 많다고는 하지만 기본적으로 30~40일을 기본으로 생각한다고 한다.

 

   한시라도 더 공부시키려하고 학교에 빠지는 것을 죄로 아는 한국 교육의 오피셜도 미니멈 30일로 잡는 것이 휴식이다. 하물며 우리 스스로 선택하고 여유를 찾으려하는데 한달이 과연 긴 기간일까. 끝없이 달리는 입시지옥 속에서 잠깐 숨돌리는 방학이 30일이다. 몇 년을 쉴 틈없이 달려온 당신에게 주는 선물이 30일로 괜찮을까.

 


 

 

   살면서 가장 오래 쉬었던 기간은 1년 휴학을 했던 기간이지 않았을까 싶다. 바쁘게 사는 것 만이 정답인 줄 알았던 시간을 넘어서 '쉬고싶다'라는 단어를 처음으로 어머니께 꺼냈다. 당연히 엄청난 반대가 있었고 아직도 어머니는 날 이해하지 못하시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때가 가장 좋았던 때였다. 1년을 쉬면서 알바라는 것도 제대로 처음 해보고, 연애도 참 열심히했다. 많이 놓쳤던 것들도 있지만 그정도로 충분했다. 그 1년은 지금까지 성공에 대한 확실한 믿음을 불확실함으로 바꾸어버렸고 대신 현실과 세상에 대한 눈을 넓혀주었다. 아마 그 때 쉬지 않았다면 지금처럼 글을 쓰며 내 생각을 정리한다는 시도도 못했을 것이다. 할 이유도 없고 할 줄도 몰랐을테니 말이다.

 

   1년을 쉬면서 고작 2가지의 일을 제대로 했다. 알바와 연애. 그런데 하물며 한달을 쉬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잠깐 숨돌리는 시간과 휴식의 기간은 많이 다르다고 생각한다. 기존의 일상과 앞으로의 내일을 분리하려면 한달로는 조금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쉰지 1달 반정도가 지나가는 지금, 나는 이제서야 여유라는 것을 찾았다. 가끔씩 찾아오는 불안감에 맞서는 법을 이제야 조금씩 알아가는데 한 달정도의 시간이 소요된 셈이다. 과거의 불안함이 날 붙잡고 있었고 이를 떼어내어 휴기 기간 이전의 나를 이제야 분리하는데 어느정도 성공했다.

 

   뭐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고 물을 수 있지만, 내 휴식의 목적은 사람과 사회에 찌들고 더러워진 마음을 정화하는데 있기에 과거의 나를 떨쳐내는 것이 매우 중요했다. 잔고가 조금 적더라도 행복함은 넘치는 삶을 살고 싶었고 사람들을 품을 그릇을 되찾고 싶었다. 그러지 못했던 나의 버릇과 생각의 방향을 돌리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현실적인 유혹이 자꾸 나를 찾아왔고 당장의 잔고보다 5년, 10년 후의 행복을 바라보면서 지금을 만들어가려고 한다. 그런 시작점을 밟는데 한 달정도가 걸린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조금 놀라운 시간이기도 하다. 한 달정도나 걸릴 것으로 예상하지 못했었다. 일주일정도 쉬면 몸도 마음도 편안해지고 다시 무언가를 준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일주일이 흐르고, 이주일이 흘러도 몸은 휴식을 원했고 마음 역시 게으름을 피우고자 했다. 그럴수록 커지는 것은 자책감이었고 작아지는 것은 자존감이었다. 이미 바쁘게 돌아가는 사회 속의 노예로서 길들여진 것이었다. 계속 채찍질을 당하다 채찍질이 없어지고 초원에 풀어지니 오히려 불안해진 경주마처럼 말이다.

 


 

   명확한 시간을 정해줄 수 없다. 글을 읽는 당신도 그것을 알지 않는가. 휴식의 목적은 각각 다르고 원하는 것도 각각 다를 것이다. 2주면 충분한 사람이 있을 수 있고 2년이 부족한 사람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가능하면 길게' 휴식 기간을 가지라는 것이다. 휴식을 인생의 다음 장으로 넘어가려는 것이라면 적어도 지난 날의 나와는 달라진게 있어야하지 않겠는가. 그것이 며칠만에, 아니면 한두달만에 뚝딱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하지 말자. '사람은 변하지 않는다'라는 말을 믿고 있으면서 '나는 한 달이면 다르게 변할 수 있어'라는 생각은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것인가. 그런 오만한 생각을 하지 않기를 바란다. 그렇게 한두달만에 성인이 될 수 있으면 세상 사람 전부 완전한 인격과 불안함 없는 인생을 살테니 말이다. 힘들기 때문에 다들 클리닉을 다니고 긴 휴가를 떠나는 것이다.

 

길게, 천천히, 그리고 깊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