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른이 되었어요/살면서 겪었던 모든 꼰대들에게

무심코 들은 말에 상처 받은 하루

   간단한 몇가지로 평가를 당하는 것은 익숙하지만 그렇다고 그로 인하여 상처받지 않는 것은 아니다. 그저 무덤덤하게 넘기는 스킬만 늘어가는 것이 인생의 짬바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무덤덤하게 넘기기에는 내 성격은 꽤 예민한 편이고 상처받기 쉬운 성격이라는 것을 새삼 깨닳았다.

 

   나이 든 사람들 중 몇몇은 자신의 인생에 자부심이 넘치는 나머지 그 이외의 길은 크게 인정하지 않으려는 경향을 보인다. 이번에 새로이 입사한 회사의 대표님이 이런 성향을 가진 듯 하다. 아직 입사 1일차이지만, 너무나 쎄하게 다가오는 꼰대의 느낌은 어쩔 수 없는 것 같다.

 

   오늘의 속풀이는 이러한 이야기이다. 카페를 2주만에 그만둔 나에게 하는 이야기였는데, 그런 곳에서 일을 하니 어떤 느낌이었나 묻는 대화였다. 나중에 글을 쓸 일이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나름대로의 느낀점을 이야기하였다. 그런데 대표님이 하신 말씀은 꽤나 놀라운 발언이었다. "그런데서 일해보니 네가 얼마나 편하게 공부하면서 지냈는지 알겠지?" 라는 말이었는데 순간 너무 당황스러워서 대답을 잠시 하지 못하였다. 이렇게나 쉽게 타인의 삶에 대해서 이야기 할 수 있다니. 뭐 어찌어찌 개인적인 부분이라 대답하기 어렵다고 둘러대기는 하였으나 나중에 곰곰히 생각해보니 나름 상처 받았던 모양이었다. 속이 불편한 것을 보니 말이다.

 

   정말로 자습서 한 권 살 돈이 없어서 알바를 하면서 학교를 다닌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인정한다. 그 사람들 보다는 나는 편하게 공부한 편이다. 그러나 절대로 나는 편하게 공부한 적이 없다. 집안 사정이 여유로웠던 적은 한번도 없으며, 가정폭력에서 벗어난 것은 겨우 고3이 눈 앞에 다가왔을 때의 일이었다. 남들 다 듣는 인강, 학원은 생각도 못했으며, 독서실 갈 돈을 아끼고자 학교에서 밤 11시까지 남아서 공부를 하였다. 자습서 사는 돈도 부모님께 말하기 눈치보여서 한 권을 고르는데 신중을 기해서 고르며 공부했다. 대학교에 가서도 1주일 4만원의 용돈을 받으며 학교를 다녔다. 나머지는 모두 촬영 알바, 방청객 알바 등의 잡일을 뛰면서 생활비를 충당하였다. 취준생 시절인 4학년 때도 돈이 부족해 카페 커피 대신 레쓰비, 김밥천국 대신 2천원짜리 학식을 먹으며 학교를 다녔다. 그래야 생활이 가능했으니까.

 

   그런데 그냥 서울에서 2년 회사 다니다 내려오고, 집에서 몇 달간 놀았고, 카페를 그만뒀다는 이유로 나는 편하게 인생을 산 그런 철부지가 되어버렸다. 설사 그렇게 판단되었다 하더라도 직접적으로 들으니 속에서 억울함, 서러움과 비슷한 어이없는 감정이 차올랐다.

 

   이런 일로 아직도 상처받는 것을 보니 나이에 비해서 어려보인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닌 듯 하다. 그럼에도 내 이야기를 제대로 듣지도 않고 함부로 평가받는 일은 아직 나에겐 익숙한 일은 아닌 모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