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Daily Diary

들을게 없는 요즈음, 이진아를 생각해본다

   한창 군대에서 눈을 쓸고 전역일만 기다리던 시절, 당시에는 오디션 프로그램들이 유행이었다. 슈스케를 필두로 한국 방송가를 흔들었던 오디션 프로그램은 자신들이 기준이라던 지상파의 자존심을 무너트리기에 충분했고 지상파들도 어쩔 수 없이 위대한 탄생, k팝스타 등의 프로그램들을 편성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나름 화제성도 있었고 나름 나쁘지 않은 결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2014년 말 나는 이진아라는 새로운 싱어송라이터의 출현에 빠져있었다.


이진아 알고 있었어?

   나름 노래를 많이 듣다보면 들을 노래가 사라진다. 명곡이 왜 명곡으로서 사람들 머리 속에 기억되겠는가. 다양한 사람들의 귀를 만족시킬 수 있는 노래는 생각보다 많지 않다. 당시의 나도 그랬었다. 2014년 말, 군대에서 전역만 기다리면서 주말에 싸지방에서 몇시간 씩이나 보내던 나는 멜론이 닳고 닳을 정도로 노래를 듣고 살았었다. 친구에게서 노래를 추천받고 또 그 노래만 몇시간 동안 듣다보면 아무리 좋은 노래라도 질리기 마련이다. 그리던 와중 몇개월만에 돌아온 k팝스타 1회에서 이진아라는 충격적인 싱어송라이터를 듣게 된다.

 

   이진아는 당시에 이미 앨범을 냈던 경험이 있는 가수였다. 시간아 천천히라는 곡은 이미 방송 1년전에 발매되었던 앨범이었지만 대중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묻혀버렸다. 그런데 방송 1회에서 보여준 시간아 천천히라는 곡은 바로 디지털 싱글로 발매되면서 차트를 석권하였다. 나 역시도 노래를 듣자마자 키보드 소리와 목소리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 "뭐지 진짜 이 노래? 미친거 아냐?"라는 말이 절로 나올정도로 좋은 노래였다. 왜 이런 노래를 알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충격적이었다.

 

   당시에 유희열 심사위원이 말한 것으로는 (정확히는 기억이 안나지만..) 우리가 들을 노래가 없는 것이 아니라, 좋은 노래를 찾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였다. 맞는 말이다. 이미 발매된지 1년이나 지난 노래였으나 아무도 그 노래에 대해서 알지 못하였다. 그리고 이미 1년간 누군가의 플레이리스트에만 있었을 노래는 방송이라는 플랫폼을 통하여 차트에 거대한 폭탄을 터뜨렸다. 새삼 한창 들을 노래가 없다고 징징대던, 나름 리스너라고 자부하고 있던 나는 창피함을 느꼈다. 이렇게 좋은 노래들이 단지 이 노래만 있지는 않을 텐데 접근하기 쉬운 노래만 들으면서 리스너라고 말하고 있었구나.


혁오_20

 이진아로 시작 된 숨은 명곡 찾기

   개인적으로 2014년은 기존의 노래 듣는 방식을 바꾸어 놓은 한 해라고 생각이 든다. EXID의 역주행, 이진아의 시간아 천천히 등 기존에 숨겨져 있던 노래들을 대중이 인식하기 시작한 해라고 말하고 싶다. 기존에 있던 오디션 프로그램들의 히트곡들의 특성은 원래 대중이 알던 명곡을 재해석 하는 방식, 그리고 새로운 세대에게 과거의 명곡을 다시 알려주는 느낌이었다면, 2014년 말을 기점으로 기존의 명곡이 아닌 숨겨진 명곡을 찾는 것이 트렌드로 변화했다고 생각한다. 이는 2015년 혁오의 재발견, 2017년 좋니까지 이어진다고 생각한다.

 

   인디씬이 더 이상 인디가 아니게 된 것도 아마 이때부터이지 않을까 싶다. 인디 가수들에 대해서 시선이 바뀌고 '인디=비주류 음악'이 아닌 '인디=힙한 음악'이라는 인식으로 바뀌었다. 많은 사람들이 혁오에서 그 시작점을 찾을 것이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이진아가 그 시작이라고 생각한다. 아니, 조금 더 올라가면 무한도전 서해안 고속도로 가요제의 10cm까지 올라가야 하겠지만 말이다. (시작을 따지는 것 자체가 너무 어려운 일인거 같다.)


오늘은 어떤 노래를 들을까?

   이러한 변화는 스트리밍 서비스의 변화로 이어졌다. 멜론은 실시간 차트를 바꾸어 24시간 차트만 제공하기로 하였고, 멜론DJ라는 서비스를 만들어 사용자의 기분, 날씨, 최근 들은 목록 등을 기반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제공한다. 사실 이러한 플레이리스트 기반의 서비스 제공은 스포티파이, 애플뮤직, 유튜브 뮤직 등 해외 사업자들은 진작에 제공하던 방식의 서비스이다. (우리나라 사업자들은 기존의 차트 형식의 서비스를 고집하려 하였으나 음원 사재기라는 눈 앞의 이익에 눈이 멀어 차트의 신뢰도, 업체의 신뢰도 자체를 날려먹었다는게 내 생각이다.)

 

   사용자 입장에서 이러한 변화는 매우 환영한다. 멜론 유저로서 아직 미흡한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긴 하지만 말이다. 아무리 개인이 추천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그 수많은 음원 중에서 우리에게 노출되는 음원은 소수일 것이 분명하고, 그 중에서도 대중성에 익숙해진 귀를 만족시킬만한 노래를 찾는 것은 굉장히 힘든 일이다. 그래도 아이돌 팬덤에 점령되고, 사재기 기계에게 점령된 차트를 보고 있는 것보다야 낫지 않을까 싶다.

 

   개인적으로 내 플레이리스트의 수명은 2주 내외이다. 명곡이든 아니든 정말 완벽하게 취향저격한 노래는 1년이고 3년이고 듣지만 그러지 못한, 적당히 내 취향에 맞는 노래는 대부분 2주 정도 자주 듣고 그 이후에는 새로운 노래에게 플레이리스트의 상단을 내어준다. 가끔 정말 바쁘고 정신 없을 때는 취향이고 뭐고 무조건 신나는 노래로만 한 달정도 달릴 때도 있다. 그렇게 얼마간의 시간동안 내 귀를 즐겁게 해주던 노래는 한 달에 한 번 정리하는 플레이리스트에 저장되어 아마 1년 후 오늘 즈음에 다시 한두번 들려질 것이다. 오늘의 감정과 기분을 고스란히 담은 채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