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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aily Diary

상상 속의 세상은 언제나 화려하고 완벽하다

 

   몇 년 전 같이 창업동아리를 했던 후배에게 디엠이 왔다. 몇 달 전에 퇴사한 회사에 인턴으로 들어갔는데 회사 홍보영상에 내 얼굴이 보여 디엠을 보냈다는 것이다. 세상 좁다좁다 하지만 지방에서 서울까지 올라갔고, 수많은 광고대행사 중에서 하필 내가 퇴사한 회사에 입사한 것은 무슨 우연일까. 여튼 후배에게 잘 부탁한다는 핑계로 오랜만에 회사 팀장님들께 연락을 드렸다. 퇴사가 고작 3달전이라 다들 반갑게 받아주셨다. 지금 진행되는 프로젝트나 지나가는 말로 언제든지 돌아오라는 인사도 건내주었다. 참. 지금 백수라서 그런가. 살짝 흔들리기도 했다.

 

   나는 세련되고 잘나가는 삶에 대한 동경이 있었다. 제주라는 작은 사회는 내가 생각하는 만큼 세련되지 못한 곳이었다. 거기에 장거리 여행으로 서울을 왔다갔다하다보니 괜히 눈만 높아져 있는 상황이었다. 거대한 강남대로의 모습, 센트럴시티에 붙어있는 백화점의 화려함, 대학로에 우글거리는 대학생들. 서울에 다녀왔다가 제주로 돌아오면 참 답답하고 촌스럽다는 생각을 많이했다. 그래서 서울로의 상경을 결정했고, 역삼의 작은 광고대행사로 출근하게 되었다.

 

   사무실은 5명 정도의 자그마한 사무실이고 화장실도 남녀공용으로 하나였지만 강남에 있다는 이유만으로 만족하면서 다녔다. 광고주도 이름만 대면 아는 외국계 회사였고 TV를 틀면 내 광고주의 CF가 송출되고 있었다. 내가 영업을 한 것도 아니고 TVCF를 제작한 것도 아니었지만 아마 잘나가고 있다는 자기암시를 걸고 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별거 아닌 일임을 깨닫고 이직을 하게 되었다.

 

   다음 회사는 구로의 중견으로 넘어가는 중소기업이었다. 구디의 거대한 빌딩들, 지밸리몰의 세련됨, 젊은 사람 넘쳐나는 사무실. 이 회사라면 내 만족감을 채워줄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카메라도 충분히 최신 기종으로 지급되었고, 컴퓨터도 32인치, 27인치 와이드로 짱짱하게 지급되었다. 집도 회사 근처의 신축 오피스텔로 이사했다. 집 근처가 유흥가라는 것만 제외하면 내가 생각했던 서울의 생활이었다. 주말에는 커피빈이나 폴바셋에 가서 책을 읽고 독서 모임에 나가서 대학생들과 토론을 하고 가끔 친구를 만나 hnm에 가서 쇼핑을 하고. 월급도 올라 생활도 나름 넉넉하게 하였다. 그럼에도 왜 만족이 되지 않는 것일까. 주위에서는 서울에서 안정적으로 지내는 내 생활을 부러워했고 대기업은 아니지만 업계에서는 명함만 내밀면 알아주는 회사였다. 1년을 조금 더 넘게 버티다 결국 고향으로 돌아왔다.

 


 

   겉보기에 세련된 삶이라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새삼 깨닫고 돌아왔다. 겉으로 화려한 사람들은 나보다 무수히 존재한다. 당장 인스타만 들어가보더라도 세상 대부분의 사람은 강남에서 외제차를 타며 와인을 마시고 있으리라. 하지만 내 마음의 공허함과 겉의 세련됨의 격차가 커질 수록 상상 속의 커리어맨과는 멀어져가고 있었다. 자연스럽게 나타나는 것이 아닌 내가 허겁지겁 따라가야 하는 화려함은 내 그릇의 조각을 동력삼고 있었다.

 

   근본적인 원인은 내 능력이 부족함에 있다고 생각한다. 단순하게 노오력이 부족했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말 그대로 내가 바라던 화려한 삶을 살기에는 능력이 부족했다. 남들보다 훨씬 특출난 기술이 있는 것도 아니었고 모아둔 돈이 많이 있던 것도 아니었다. 그러면서 겉으로 보이는 모습은 그런 사람들처럼 살기를 원했으니. 욕심이 아니면 무엇이란 말인가. 괜히 오기만 생기고 마음이 허해지는 것은 당연히 따라오는 결과였다.

 


 

   상상 속의 세상은 언제나 행복하다. 지금이 힘들다면 상상 속에서 느끼는 행복감은 훨씬 크다고 본다. 분명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 같다. 상상을 현실로 만들라고. 음. 동의는 하지만 상상은 상상으로 남겨두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한다. 상상 속의 세상을 따라가다 지금의 나를 놓치는 것이 더욱 아깝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조금 더 나은 상상 속 세상의 나는 아마도 지금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기에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을까. 겉모습만 똑같은 지금의 나와는 아예 다른 사람일 수 도 있다. 그런데 그런 삶을 쫓아 무슨 의미가 있을까.

 


무조건적인 행복보다는 지금 내가 행복할 이유를 생각해 보는 것이

더 행복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