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을 쉬면서 나의 외출의 대부분은 동네 카페에 와서 노트북을 꺼내 띵가띵가 시간을 보내다 가는 것이다. 글을 쓰겠노라 다짐하고 한 달 전에 5개월 할부로 지른 노트북으로는 아직 2편의 글 밖에 쓰지 못했다. 생각보다 글을 쓴다는 일은 시간을 오래 잡아먹는 작업이었고, 내 생각을 정리하는 것 역시 정성을 들여야 완성이 되는 작업이었다.
뭐, 오늘도 그런 날 중 하나이다. 최애 음료인 스벅의 슈크림라떼를 마시고자 (오늘이 재발매일이다) 동네 스벅으로 차를 몰았으나, 이미 주차장은 만원. 평일이지만 다들 노곤한 2월 말 봄 날씨를 참지 못하고 나왔나 보다. 슈크림라떼를 뒤로하고 다시 다른 카페로 이동하였다. 이번에는 동네 파스쿠찌. 다행히 노트북을 할 만한 자리가 하나 남아있었다. 물론 여기도 사람들에게서 봄의 들뜬 기운이 느껴지는 장소였다.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와서 노트북을 키는데. 마우스가 안 움직인다. 왜지. 물론 한 달 전에 새로 산 마우스에 있던 건전지를 끼우고 썼지만, 이렇게 갑자기? 두세 달 쓴 것도 아니고 한 달 밖에 안 썼는데? 새삼 느껴지는 억울함을 뒤로하고 노트북을 접을까 생각해본다. 가방에는 중고서점에서 주워온 책이 있었고 책을 읽다 보면 엄마가 전화 올 때 까지는 충분히 심심치 않게 보낼 수 있다. 그런데 그런 게 있지 않은가. 뭔가 억울한 느낌. 그래도 무언가를 쓰고 싶어서 온 것인데 이렇게 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어차피 블로그 포스팅은 마우스를 많이 쓰는 작업도 아니고 한 번 마우스 없이 노트북을 다뤄보는 건 어떨까.
의외로 나는 '완벽주의자'이다. 헐랭한 일상생활과 성격과는 다르게 무언가에 집중할 조건을 만드는데 완벽주의자 기질이 발휘된다. 어릴 때 공부를 시작하려면 책상 정리와 청소에 시간과 에너지를 모두 쏟고 막상 공부할 때는 집중력이 흩트려져서 못하는 타입 있지 않은가. 그 타입의 정석이 바로 나다. 외출을 하기 전에도 가방에 항상 모든 것을 가져가야 안심하고 사람을 만날 때 집중하는 타입이다. 안경닦이, 립밤, 선크림, 티슈, 핸드크림, 충전기, 이어폰 등등 하나라도 없으면 걱정되고 불안해져서 상대방에게 집중할 수 없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내 가방은 항상 한가득 무언가가 들어있다.
그리고 이런 성격에 급한 성격까지 더해졌으니, 참.. 오히려 주위 사람들이 내 눈치를 보는 일도 종종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지난 연애들은 어떻게 했는지, 생각할 수 록 그녀들에게 미안해진다. 여튼, 무언가 현장, 혹은 약속 장소에 있을 때 상대방이나 내가 무언가 빠진 게 있다면 표정관리도 안되고 답답해하는 그런 성격이다. 그런데 오늘 새삼 서른이 되고 내가 바뀌었다는 생각을 하였다.
서울에서 만난 팀장님은 왠만해서는 화를 내지 않는 성격이셨다. 촬영 날 지각을 할 때도 있었고, 카메라 가방을 현장에 두고 온 적도 있었다. 사실 많이 혼날 각오로 실수를 말하는 경우가 많았으나 다행히 크게 혼난 기억은 없다. 뭐, 당시에 어떤 기분이었는지 한 번 말해주신 적이 있는데 지금은 기억에 남지 않는다. 나에게 기억에 남는 것은 차분하게 다음 해결 방법을 찾아가는 팀장님의 모습이었다. 워낙 급한 성격으로 많은 실수를 저질렀던 나와는 반대되는 모습이셨다. 난 참 그 모습을 보고 배워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오늘 스타벅스의 만원인 주차장을 보고, 건전지가 다 떨어진 마우스를 봤을 때, 예전의 나였으면 어땠을까. 완벽하지 못한채 맞이한 오늘의 계획들을 망쳤다는 짜증에 이도 저도 못하고 하루를 마무리했을 것이다. 괜히 죄 없는 머피의 법칙을 들먹이며 하나가 꼬이니까 이러저러한 모든 것들이 날 방해한다고 구시렁대면서 하루를 망쳤을 것이다. 서른이 되어서일까. 꽤 좋은 모습의 선배를 봐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입사 대기 상태에서 여유로운 매일을 보내고 있어서일까. 오늘의 나는 꽤 차분했다. 사실 좀 당황하기는 했지만 뭐 짜증 낸다고 달라지는 것도 없고, 차선책이 아예 없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무덤덤하게 지금의 상황을 맞이하기로 하였다.
전에 어느 예능의 캡쳐본을 본 적이 있었다. 아마 전참시였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매니저가 길을 잘못 들자 연예인이 말하는 것이 '모든 길은 결국 이어진다'라는 내용의 말이었다. 한시가 급한 상황에서 짜증을 낼 법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차분함에 감탄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그러하듯이 나도 네비에서 알려주는 길을 잘못 들거나 다른 차가 실수를 하면 으레 욕이 나오는 사람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적어도 네비에서 알려주는 길을 잘못 들어간다고 욕을 하지는 않는다. 뭐. 조금 늦게 갈 수는 있지만 길을 아예 잘못 가게 되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생각해보면 운전은 오히려 짜증을 낼 이유가 없는 분야이다. 내비게이션은 항상 완벽한 목적지를 두고 길을 안내해주고 내가 실수를 하더라도 다시 목적지를 향해 가는 길을 완벽하게 알려준다. 즉, 완벽한 결과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 운전이라는 분야이다. 그럼에도 왜 짜증을 내는 것일까. 정말 아주 조금, 끽해봐야 5분~10분 늦게 도착할 뿐인 것인데.
개인적으로 시간 약속에 관대한 편이다. 남자들끼리의 약속이 그러하듯 제 시간에 모인다는 거 자체가 어렵기도 하지만, 그렇다고 짜증을 내거나 화를 내는 일은 이제 없는 듯하다. 회사를 다니던 시절에도 많은 사람들이 약속 시간에 늦고, 내가 늦는 경우도 많았다. 사람 일이라는 것이 어떻게 될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이다. 스튜디오를 빌려 둔 시간은 정해져 있는데, 모델이 도착을 하지 않고, 현장팀은 속만 타들어 가는 경우도 있었다. 하지만 별 수 없지 않은가. 우리도 촬영 시간을 딜레이 시킬 수 있는 것이고, 괜히 짜증을 내어 분위기를 망쳐 좋은 영상을 찍지 못할 수 도 있는 것을. 이런 모든 리스크를 안고 짜증을 내 느리 상대방에게 관대한 모습을 보이는 것이 더 낫지 않을까 생각한다.
가끔 있다. 시간 약속을 지키고 못지키는 것 하나만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사람들 말이다. 회사에 지각한 것을 기본 인성이 되지 않은 사람으로 몰아가며 눈치 주는 대표, 10~30분 늦은 것을 핑계로 갑질 하려 드는 광고주 등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본인들은 얼마나 칼 같이 완전한 인생을 살고 계신가 묻고 싶다. 시간 약속에 완벽하게 칼 같은 사람 치고 평판이 좋은 사람을 본 적이 없기 때문에 나는 그렇게 살지 않을 것이다.
올 해 나의 목표 중 하나는 '그릇 키우기'이다. 서울 생활을 하면서 항상 손해보지 않고 눈치 보는 습관이 들어서 이를 없애고자 내 마음의 그릇을 키우고자 한다. 물론 타인에게 관대하고 나에게도 관대한 그런 그릇 말이다. 타인에게 완벽하고 나에게는 엄격한 그런 위인은 되지 못한다 나는. 하지만 마음의 여유를 찾아 다른 사람들의 마음도 담을 수 있고, 나에게도 위로의 공간을 내어 줄 수 있는 마음의 크기를 가지면 완전하지는 않지만 여유롭고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지 않을까.
실수 할 수 있다. 무언가 상황이 마음대로 돌아가지 않을 수 있다. 그것이 자의든, 타의든 사람 삶이라는 게 항상 내 뜻대로 돌아가지 않는다. 하지만 실패할 수 있고 그 실패가 나를 잡아먹지 않도록 여유를 가지는 사람이 되고자 한다. 적어도 서른이 되었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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