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이 되었어요

미니멀리즘을 시도해보다

HHHHHYUN 2020. 5. 26. 17:34

완벽함이란, 더 보탤 것이 남아 있지 않을 때가 아니라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된다

_앙투안 드 생텍쥐베리


   미니멀리즘이(minimalism)이라는 단어는 지난 몇 년의 우리 생활을 관통하는 단어이자, 가장 모순되는 단어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면 최근 몇 년간 내 주위의 삶을 이야기하는 단어는 소소한 행복과 보통 연관되어있다. 소확행, 씨발비용, 플렉스 등 소소한 소비를 지양하는 단어가 최근 몇 년간의 MZ세대를 설명할 수 있는 용어다. 그리고 조금 아이러니하게도 20대의 명품소비는 나날히 증가하여 최근 직장인, 학생들의 명품소비도 증가하여 명품시장 전체 매출액의 10% 이상이 20대 이하의 소비자에게서 발행하는 매출이다. 마케터들의 승리인지는 몰라도, 최근 우리의 라이프스타일은 전체적으로 소비주도적인 모습이 다분했다.

 

   이런 와중에 미니멀리즘이 트렌드가 아니라고 할 수도 없는 것이 인스타그램에 #미니멀리즘 을 단 게시글만 33만개가 넘어간다. 미니멀리즘은 추구하지만 소비는 해야한다. 조금 아이러니한 최근 트렌드 시장이라고 생각이 된다. (마케터들은 이리저리 단어를 붙일 수 있어서 행복하겠지만 말이다.) 거기에 몇 년전 효리네민박이 대박을 치면서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추구가 더욱 불붙은 것도 사실이다. 최근 시작한 삼시세끼 어촌편의 경우 최근 시청률 10%를 돌파하면서 여전히 사람들이 미니멀 라이프에 대한 욕구가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었다.


   나는 미니멀 라이프와는 상당히 동떨어진 사람이다. 쉽게 말하면 쇼핑중독자이다. 지난 몇 년간 서울생활+회사생활을 하면서 꽤나 잘 못 길들여진 생활습관이다. 혼자서 생활하는 직장생활은 다분히 불만족스러울 수 밖에 없고 나도 어디서 본 듯한 그럴싸한 삶을 살고 싶었다. 그래서 이리저리 내 공간을 채우는데 상당히 열중했다. 옷장도 한가득, 신발장도 한가득, 그리고 방도 조금조금씩 채워져나갔다. 거기에 정말로 200% 일조한 것이 쿠팡이다. 로켓배송이라는 말도 안돼는 서비스를 경험한 나는 조금만 필요한 것이 생각나도 바로 쿠팡앱에 들어가기 일쑤였고 그리고 바로 주문하는 것이 버릇이었다. 쿠팡을 사용하는 사람들은 밤 12시의 초조함을 알 것이다. 자정이 지나가면 배송 날짜가 하루 미뤄지기 때문에 11시 59분 59초까지 주문을 완료해야하는 강박에 시달리는 것이다.

 

   제주로 이사와서도 이런 습관을 고쳐지지 않았고 한달 카드값 150만원이라는 기록을 이어가고 있다. 최근에는 일상용품 보다는 패션에 대한 소비가 많아졌다. 여름이 되서 여름을 준비한다는 명목으로 이러저러한 옷들을 사고 있다. 사실 없어도 생활하는데는 지장이 전혀 없다. 데이트를 할 것도 아니고, 직장을 다니는 것도 아니고, 진짜 옷 입고 나가는 시간보다 잠옷을 입고 집에서 노는 시간이 더 길다. 그런 와중에 옷을 사는 아이러니함.. 쓰다보니 반성하게 된다. 아마도 보여줄 일이 없고 무언가 평가받을 일이 없다보니 더욱 소비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된다.


 

   그러던 와중에 최근 당근마켓에 물건을 몇개 팔았다. 운동하려고 산 신발의 사이즈가 커서 팔았고, 새로 산 블루투스 스피커의 음질이 너무 마음에 들어 기존에 쓰던 스피커를 팔았다. 근데 이게 또 쏠쏠하게 재미있다. 애초에 안 쓰던 제품들이었고 놔둬봤자 필요만 없을 제품들이기 때문이다. 쓰레기를 버리는 것은 0, 혹은 마이너스 이지만 이건 그래도 나름의 플러스가 존재한다. 그러다보니 조금 중독성을 가지게 되어서 요즘은 집에서 팔면 괜찮은 물건들만 보고 있다. 그러다보니 비우는 재미를 조금 알 것도 같기도 한 요즘이다. 빈 집에 처음 들어갈 때는 채우는 재미로 살았는데, 이미 채워져있는 집에 들어와보니 비우는 것 역시 상당히 재미있다.


   맨 위에 쓴 말처럼 완벽한 것이란건 더 이상 뺄 것이 없을 때 완성되는 것 아닐까. 영상을 만드는 과정도 비슷하다. 편집은 좋은 것을 채우는 것이 아니라 더 좋은 것을 남기는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최소한의 것으로 최대한의 짜임을 만들어 내는 것. 그것이 편집이고 좋은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스타일, 라이프 등등 다양한 것들이 삶을 구성하는 대부분의 것에 적용할 수 있는 말인 것 같다.

 

플레이리스트에 듣지 않는 노래를 자꾸 넣기보다는

내가 자주 듣는 노래만으로 플레이리스트를 채울 수 있고

 

무언가를 하고자 자꾸 시간을 할애하기 보다는

나를 위한 시간만으로 시간을 채울 수 있고

 

화려하고 비싼 것을 몸에 걸치기 보다는

좋고 나에게 맞는 것 하나를 몸에 걸치는 것이

 

훨씬 멋있는 내가 되는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괜한 허세로 시간을 보냈던 지난 몇 년이라고 생각한다.

좋은 것을 걸치기보다는 나에게 맞는 라이프를 사는 방법에 대해서, 늦었지만 이제라도 고민해보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