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식의 허가_시간잊기
휴식 기간이 길어지면서 새삼 느끼는 것이 하나 있다. 날짜의 개념이 무감각 해진다는 것이다. 정확히 말하면 지금까지의 생활을 날짜와 요일에 맞춰서, 그에 쫓기면서 살아왔구나 하는 깨달음이라는게 정확하겠다. 시간에게서 자유로워짐을 느끼는 것이 이렇게 여유로운 것이구나 새삼 느끼고 있다.
우선 요일의 개념이 많이 사라지고 있다. 오늘이 월요일인지, 수요일인지, 아니면 불금인지 그닥 신경쓰이지 않는다. 기독교를 다니는 신자도 아니고 주말드라마를 기다리는 편도 아닌지라 요일의 개념이 많이 모호해진다. 사실 오늘도 노트북의 날짜를 보고 금요일인걸 처음 알았다. 수요일 정도 되지 않았을까 생각했는데... (뭐.. 다시 말하면 공부에서 손을 놓은지 벌써 일주일이 되어가고 있다는 소리이기도 하다)
날짜 개념을 잊은 김에 휴식의 허가에 새로운 개념을 추가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시간 잊기'이다. 지금까지의 나는 불금이되면 무엇을 할지, 주말이 되면 무엇을 할지, 혹은 몇시까지 무슨 업무를 끝낼지, 며칠까지 편집을 끝낼지 하는 눈 앞에 있는 미션을 시간과 날짜에 맞춰 해결하면서 지내왔다. 항상 목표, 마감을 세워야했고 그래야만 행동에 옮겨지는 편이었다. 1분이 모여 1시간이 되고, 1시간이 모여 하루가 된다. 당연한 논리이다. 내 1분, 1시간은 모이고 모여 목표된 날짜까지 다다르게 하는 기간이었다. (지금까지는 내가 썼지만 너무 당연한 소리 같아 좀 민망하다)
'시간 잊기'
시간을 잊는다는 것은 지금 나에게 온전히 집중하고자 하는 생각이다. 시간계획표를 짜는데 익숙한 우리는 놀 때도 시간을 정해두고 놀고, 공부할 때도 시간을 정해두고 논다. 그것이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나의 욕구'와 '나의 즐거움'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시간을 정해 둔 즐거움과 업무에서 효율은 있을지 몰라도 나의 욕구는 철저히 무시당하기 마련이다. 조금 더 시간을 주면 더 창의적인 생각이 나올거 같은데. 조금 더 시간을 주면 더 속 시원하게 놀 수 있을거 같은데. 하지만 시간표 속에서 우리는 이런 욕구를 무시하며 효율성을 향해 달려간다. 돈이 되어버린 시간 속에서 하나의 일이라도 더 해야하는 우리이기 때문이다.
여유로울 수 있을 때 여유롭고 싶다.
여유로울 때 조차도 무언가에 쫓기고 싶지 않다.
나는 나의 욕구에 충실한 그런 원초적인 사람이 되고자 한다.
하고 싶은 대로 할 것이다.
지금까지 포스팅해 온 글의 주요 주제들은 타인에게 강요된 휴식의 강제성이었다. 1이라도 효율적인 생활을 하지 않으면 무의미한 시간이라고 정의해버리는 사회 속에서 이루어지는 세뇌같은 강제성 말이다. 스스로에게도 이런 세뇌가 되어있었고 휴식 기간의 여유로움을 시간이라는 칼로 쪼개버리고 있었다.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생각은 내팽겨둔채 말이다. 그래서 조금 룰을 정해보고자 한다. (이 역시도 틀을 만드는거 같긴 하지만 말이다)
1. 하루에 할 일은 하나만
당연한 말이겠지만 하루의 할 일이 줄어들면 시간적인 여유는 충분해진다. 하지만 실제로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그에 맞춰서 할 일을 만들어버리는데 익숙한 우리이다. 못해본 공부도 하고, 시간이 없어서 책장에 모셔두기만 한 책을 읽는 시간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을 급한 마음에 다 처리해버리려고 하기에 쉬지 못하게 된다. 쉬는 행위를 하기 위해 쉬지 못하는 마음이 되어버린다. 그래서 하루에 '한가지'만 처리하고자 한다. 오늘 책을 읽고 싶으면 할 일은 '책읽기' 하나가 되는 것이다. 1시간을 읽든 10시간을 읽든, 그것은 본인의 자유이다. 시간이 남는 시간에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오늘 하면 된다. 밀린 빨래를 하거나, 게임을 하거나, 쇼핑을 가거나. 오늘 해야 할 일은 모두 마쳤기 때문에 부담없이 '내'가 하고 싶은 하면 된다.
2. 시간 = 매일 초기화 되는 통장 잔고
시간은 돈이라는 말이 있다. 그래서 통장 잔고라는 말을 떠올려 보았다. 우리가 일을 하지 않아도 매일 다시 채워지는 통장이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은 그런 통장이라고 생각한다. 오늘 내가 어떻게 하루를 보냈든 다시 내일 하루는 찾아온다. 오늘 내가 별거아닌 하루를 보내더라도 내일 별거아닌 하루는 다시 찾아온다. 그러니 쫓기지 말자. 오늘 할 일 한가지를 해냈다면 이미 충분히 알찬 하루였고, 오늘 하지 못한 일은 돌아오는 내일 하면 된다. 날짜와 시간 따위는 잊어버리고 오늘에만 집중해도 괜찮다. 내일은 내일에 집중할 내가 있으니 말이다.
3. '쉼'에 무의미한 시간은 없다
내가 말하는 시간에는 '휴식'이라는 시간 속에서 '시간'을 잊는다는 것이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회사를 다니거나 일을 하는 시간에는 아마 시간을 효율적으로 써야하고 다시 스케줄에 갇혀 살아야 할 것이다. 그때는 낭비되는 시간이 너무 아깝고 무의미하게 시간을 보냈다고 스스로를 다그칠 것이다.
하지만 '쉼'이라는 행위 안에서 시간의 개념은 무의미하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흘려보내고 무의미함을 만들어 가는 것이 '쉼'이라는 행위 자체이지 않을까. 한달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푹 쉬었다는 말이 스스로 나올 것이다. 다시 무언가를 할 에너지가 생겼고 의지가 생겼을 것이다. 왜냐하면 정말로 쉬었기 때문이다. 그 시간이 아까울 수 있다. 하지만 그것 쉬었기 때문에 그런 생각이 드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쉬는 기간동안에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면 계속 쉬고싶어 했을텐데 말이다.
말은 거창하게 하였지만 시간 잊기에 큰 의미는 없다. 근본적으로는 시간에 쫓기지 말자는 말을 정의해보고 싶었다. 쉬는 것을 제대로 쉬지 못하는 최면에 걸려버린 우리에게 '시간 잊기'라는 단어가 조금은 여유를 찾는데 도움이 되었음 한다. 나 스스로에게도 말이다.